Rolls
Lab

같은 한 컷,
다른 필름들

비 오던 오후에 찍은 한 장을 필름마다 다시 담아 봤습니다. 사진은 하나인데 통마다 다른 날씨가 됩니다. 고르는 일이 곧 찍는 일입니다.

Blue Hour
Blue Hour
해가 진 뒤 십오 분

해가 넘어가고도 하늘은 한동안 파랗게 남습니다. 그 십오 분 동안 켜지는 불빛만 유난히 따뜻해서, 아직 들어가고 싶지 않아집니다. 하루가 끝나는 게 아쉬운 날에 감으세요.

Cold Fever
Cold Fever
열이 나던 밤의 초록

얼굴에 서늘한 초록이 돕니다. 형광등이 웅웅거리는 복도, 잠은 오지 않고 시간만 가는 밤. 조금 앓고 난 사람처럼 찍히는데, 이상하게 그런 밤이 오래 남습니다.

Nordic Forest
Nordic Forest
노르웨이의 숲처럼 차가운

그늘에는 푸른 기가 고이고 밝은 곳은 하얗게 비어 갑니다. 물가에 서서 여름이 끝나는 걸 알아차린 날의 공기입니다. 춥지는 않은데 조금 쓸쓸한, 그 사이의 색.

Winter Diary
Winter Diary
말없이 걷던 겨울

색을 모두 걷어내면 굵은 입자만 남습니다. 비 오는 거리, 말수가 줄어든 저녁,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중에 넘겨 보면 오래된 일기장 같습니다.

Iron Sea
Iron Sea
겨울 바다의 쇠빛

바다가 파랗지 않고 쇠빛으로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세고 손이 시린데도 자꾸 서 있게 되는 날. 그날의 추위가 사진에 그대로 붙어 옵니다.

Sunday Market
Sunday Market
일요일 아침의 좌판

색이 또렷하게 살아납니다. 좌판의 붉은 차양, 쌓아 둔 과일,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목소리들. 별것 없다고 생각했던 하루가 제일 자주 꺼내 보는 사진이 됩니다.

First Snow
First Snow
첫눈 오던 날의 창가

희고 부드럽게 번집니다. 창에 김이 서리고, 밖에서는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던 아침. 가까이서 찍은 얼굴이 유난히 조용하게 나옵니다.

Last Train
Last Train
막차를 기다리던 자리

빛이 닿는 자리마다 주황이 번집니다. 가로등, 편의점 유리, 아직 오지 않은 막차. 혼자 서 있어도 덜 추워 보이게 찍히는 필름입니다.

Old Letter
Old Letter
서랍에서 나온 오래된 편지

색이 거의 빠지고 누런 종이빛만 남습니다. 찍는 순간부터 이미 옛날이 되는 사진. 언젠가 서랍을 열었을 때 손이 멈추는 쪽으로 찍힙니다.

Peach Skin
Peach Skin
볕이 든 살결

살결이 따뜻하게 올라오고 그늘이 부드럽게 풀립니다. 오후 두 시, 커튼을 통과한 볕이 방 안까지 들어오는 시간. 가까이서 찍으면 사람이 조금 더 다정해 보입니다.

Terrible Love
Terrible Love
지독한 사랑

밝은 곳에 분홍이 얹히고 그늘은 옅게 풀립니다. 얼굴, 꽃, 오래 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은 것들. 감추려던 마음이 사진에 먼저 나옵니다.

Red Room
Red Room
암실의 붉은 불빛

붉은 빛만 남고 나머지는 어둠에 가라앉습니다. 조명이 하나뿐인 방, 사진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던 암실. 어두워서 오히려 또렷하게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Salt Flat
Salt Flat
빛에 다 씻긴 한낮

빛에 오래 씻겨 흰 기운만 남습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던 바다, 아무것도 없는 넓은 곳. 눈부셔서 잘 보이지 않던 그 느낌까지 같이 찍힙니다.

Long Vacation
Long Vacation
끝나지 않던 여름 방학

햇빛에 오래 둔 사진처럼 노랗게 바랩니다. 한낮의 창밖,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낸 하루. 방학이 아직 한참 남아 있던 그때의 기분이 됩니다.

Tokyo Night
Tokyo Night
도쿄의 밤, 테이프 속에

초록빛 그늘과 굵은 입자가 옛날 테이프를 닮았습니다. 간판이 뒤섞인 골목, 문을 열면 좁고 시끄러운 가게. 그날 밤이 녹화된 것처럼 남습니다.

Deep Summer
Deep Summer
숨이 막히던 한여름

초록이 깊게 밀려 들어옵니다. 비 그친 뒤의 잎사귀, 논 위로 지나가는 바람, 숨이 턱 막히던 오후. 사진보다 냄새가 먼저 올라옵니다.